새로운 도전

2021. 1. 8. 17:29카테고리 없음

728x90

#1 집에만 있다보니 히키코모리가 될까 무서웠다.

텐바이텐에서 받은 사진

  업무상 재택근무를 한다. 하지만 코로나로 지나치게 집에만 있는 일상에 예전에 있었던 블로그를 들락날락하다 마음에 안드는 것도 많고, 너무 옛날꺼라 다시 카테고리 만드는 것도 그렇고, N사라서 포탈에 묶여 있는 것도 싫고 이참에 새롭게 시작하자 싶어 여기저기 블로그를 뒤지다가 예전에 만들어 놓기만 하고 안 쓰던 미개봉 블로그가 있어서 다시 오픈했다. 집에만 있다보니 혹시라도 사회성이 떨어질까 걱정이 됐는데 ( 지인들은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했지만) 이렇게라도 세상과 소통하면 코로나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집에서 빈둥빈둥 하릴없이 놀고 있는 느낌도 안 들고, 다양한 정보를 서로 주고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밖으로 싸돌아 다니는 걸 좋아하는데 그것도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는 주말에 더더더욱 돌아다녔는데,  24 / 7으로 집에 있게 되다니 누가 상상이나 했었을까? 아마도 나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여럿 되지 않을까 싶다. 벌써  1여년째 꼬박 집에만 있으려니 처음에는 정말이지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이제는 제법 안정도 찾고 이렇게 집 안에서 할 일도 찾는 나를 발견한다. 세상과 글로 소통한다는게 항상 막연하고 또 어려운 마음이었는데, 코로나 세상이 오다보니 용기를 내게 되는 것 같다. 이왕 용기를 냈으니, 우야됐든 열심히 적어보자. 적다보면 또 다른 길을 발견하게 되고, 그러다 다시 여행하는 행복한 날도 돌아오겠지.  

 

#2 나의 생활이자 일상이 막혔다.

  어릴 때 엄마가 사다 준 "10KG로 떠나는 세계여행" 이란 책을 접 한 이후 베낭 메고 숲 속에서 오랫동안 있어보는게 소원이었다. 초콜렛을 비상식량 삼아, 라면도 끓여 먹고 어디론가 훌쩍 떠날 모험에 설레여 몇 번이나 읽고 또 읽었는지 모른다. 그러다 대학생이 되니 어떻게든 나가보자 싶어서 근로 장학생을 하면서 받은 장학금으로 이웃 나라를 몇 번 기웃기웃 거렸다. 졸업을 하고는 아예 더 먼 외쿡에서 살아보는 게 소원으로 장착, 시간 날 때마다 인터넷을 죄다 뒤졌다. 엄마 아빠에게는 씨알도 안 먹히는 이야기라, 어떻게 하면 엄마 아빠 돈 안 받고 외국에 살면서 시간 날때마다 여행을 갈 수 있을지 찾아보는게 커리어를 찾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 그렇게 돌아 돌아 (유럽인만큼 휴가를 갈 수 없을지라도) 조금이나마 여유로운 스케쥴,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게 됐다. 그렇게 분기별로 해외 여행을 다닌지 어언 10년이 됐는데......코로나가 오고......2020년부터 나의 해외 여행 계획 통장은 텅텅텅 빈털털이가 됐다. 이제 혼자 여행도 다녀보기로 하고, 새로운 스포츠에도 도전하기로 했는데 망했다. 망해도 엄청 망했다. 주름이 더 지기전에 어떻게든 하루라도 더 돌아다니고 싶었는데, 깊은 주름이 이마에 자리잡을 때까지 못갈꺼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다. 게다가 내가 너무 코리안처럼 생겨서  동양혐오가 없어질 때까지 기다리려면 유럽은 당분간 사진과 영화로 떠나야 하지 않을까 싶다. (유럽 사람들은 비교적 친절하지만 그래도 가끔 이상한 사람은 어디에나 있으므로, 웬만한 여행자보험없이 다니는 나로서는 그 작은 숫자도 걱정스럽다. ) 그래도 아쉬운 마음 조금이라도 달래려 옛날 사진이라도 올려야겠다. 언제까지 거슬러 올라갈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많이 과거 여행 하기전에 코로나가 빨리 끝나는 수밖에 없을꺼 같다. 그래도 추억 여행을 남길 수 있도록 해-주-신 코로나님께 무한 감사를 보내며, 이 꼭지의 제목을 Back to the World Trip로 정해본다.  

 

#3 영어공부는 나의 취미이자 삶이다.

   특별한 특기가 없던 나는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해도 그렇다 할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간호사 지망생이었던 친구는 졸업하면 전문직이고, 일찌감치 공무원을 준비했던 친구는 붙자마자 연금이 기다릴텐데 나는 뭘 하고 있지? 이렇게 살다가 40살이 되면 어디서 어떻게 일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머라도 내 인생에 장착을 해야 고지서 앞에서 울지 않을 수 있을텐데' 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뭘 잘하는지도 모르겠고, 세상은 너무 커 보였다. 학벌의 사회에서 내 스펙은 너무 초라했고, 아르바이트도 힘들었다. 내 스스로 나를 바라볼 때 뭘 해도 그닥 잘하는 게 없어 보였고, 사실 뭔가를 열성적으로 해본 적도 없었다. 허나 그 당시에는 잉여인간 놀이에 허우적대던 때라, 등을 바닥에 딱 붙이고, 시계를 바로 쳐다보면서 시간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내기를 하며 하루종일 꼼짝 않하고 있었다. 내 생각과 내 마음이 따로 노는 그런 시간을 지나다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 싶어서 아프리카로 봉사활동을 떠났다. 현지인이 하는 말을 하나도 알아 들을 수 없었지만, (내가 빠르게 그 나라를 배우는 걸 느끼면서) 언어를 좀 배워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렇게 영어를 만났고, 여행을 좋아하게 되면서 영어는 나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이제는 영어로 밥을 벌면서, 시간 날 때마다 해외 여행을 다니고, 영어 공부도 하고 자격증도 따고, 요즘은 영어로 주식공부도 한다. 영어는 한국어와 함께 나에게 큰 세계를 경험하게 해 준 고마운 언어이다. 내 인생을 더 풍부하게 해 준 만큼 앞으로도 계속해서 영어 뿐 만 아니라 다른 언어도 계속해서 배워보고 싶다. 

728x90